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리폴리 백국 (문단 편집) == 개요 == 1102년 4월, [[1차 십자군]]을 이끌었던 툴루즈 백작 래몽 생 질이 제노바 공화국 함대의 도움으로 현재 시리아의 해안 도시인 [[타르투스]](토르토사), 주바일 등을 빼앗고, [[트리폴리(레바논)|트리폴리]][* [[리비아]]의 수도가 아니라 [[레바논]]의 도시이다.] 포위에 나섰다. 도시 정면에 위치한 요새가 1103년에 함락되었다. 하지만 이슬람 측에도 매우 중요한 거점이었기에 성안의 아랍인들은 수비에 촤선을 다해 노력하였고 포위 도중인 1105년에 레몽이 수비대와의 전투에서 입은 부상이 덧나 사망할 정도였다. 그는 죽으면서, 아들 알퐁스 주르당을 상속인으로, 기욤 주르당을 섭정으로 삼았다. 이후 기욤은 공성전이 장기화되자 주변의 항구인 아크레 등을 함락하였다. 한편, 레몽의 서자이자 가문의 본토인 툴루즈의 섭정이던 베르트랑[* 레몽의 첫째 부인의 소생이었는데, 교황청에서 그녀가 레몽과 사촌 관계라는 이유로 무효화시켰다. 따라서 일반적인 서자와 달리 적법한 계승자를 주장할 소지가 있었다.]이 우투르메르에 도착하자 기욤과 베르트랑 간의 다툼이 일어났다. 1109년 7월 12일, 예루살렘 왕국의 탕크레드가 보낸 원군에 힘입어 트리폴리는 함락되고, 그 후 트리폴리 백국의 수도가 되었다. 이집트의 구원 함대는 8시간 늦게 도착하였다. 이슬람 황금기에 축적된 트리폴리의 대도서관안 10만권의 장서와 함께 불타 사라졌고, 시민들은 노예로 전락하였다. 그리고 그 직전에 암살된 기욤 대신 베르트랑이 트리폴리의 첫번째 백작으로 즉위하였다. 이후, 1111년에 [[시돈]]과 1124년에 [[티레]]가 십자군에 함락되었다. 백국과 [[예루살렘 왕국]]의 남쪽 경계는 [[베이루트]]였다. 트리폴리 백국은 다른 십자군 국가들과는 달리 해안의 항구 도시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따라서 10세기 이후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한 크리스트교 도시 공화국들의 지원을 받으며 쉽게 무슬림 세력의 공격에 견딜 수 있었다. 레몽 3세 때에 안티오키아 공작의 차남을 양자로 들였기 때문에, 이후 [[안티오키아 공국]]과 [[동군연합]]이 이루어져 하나의 군주가 두 십자군 국가를 다스리게 되었다. 보에몽 7세의 사후 일어난 계승전쟁 시에 제노바 공화국과 맘루크 왕조의 심기를 동시에 건드리는 병크를 내어 1289년 칼라운이 이끄는 맘루크 군대가 도시를 포위하였을 때에 제노바는 도움을 거절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